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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너는 ...해서 잘 모르겠지만"

by 오늘밤날다 2024. 5. 10.

 

 
 
나는 직장 생활을 할 때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았다.
첫 직장에서는 매년 신입사원들만 많게는 20~30명이 입사하고는 했고 매년 새로운 고객들을 만나 명함을 주고받았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그룹의 기획팀에 있다 보니 계열사의 많은 현업 담당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 번째 직장에서는 아쉽게도 신입사원은 구경하기조차 어려웠지만 첫 번째 직장보다 더 많은 고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극에 가까운 I인 나는 힘겹게 E에 가까운 가짜의 나를 보여줘야 했고 거짓 E를 흉내 내며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채 주중 내내 사람들과 대화하고 회식을 마치고 주말이 되어 가까스로 평소의 I로 돌아온 나는 기진맥진해서 흔히 주말 내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으로 체득하게 된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말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은연중에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과 그 단어들로 조합되는 문장들 안에 그 사람이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 또는 나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상대방의 생각 같은 것들이 묻어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정형화된 패턴들을 발견하게 됐지만 그중에서 한 가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들이 있다.
 

"넌 잘 모르겠지만"
"너는 A를 안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너처럼 B밖에 안해본 경우에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런 사족을 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나를 무시하거나 끊임없이 상대방과 나의 위치를 위아래로 서열을 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문장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는 반대로 생각해 보면 된다. 만일 저 사람이 저런 언어를 자신의 부모님이나 직장 상사에게도 쉽게 쓸 수 있을까? 거의 대부분 아닐 것이다. 
 
말은 어디선가 듣고 무의식 중에 배우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말을 쓰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건 스스로가 내뱉는 말들의 무게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자매품으로 이런 것들도 있다.
 
 

"내가 너한테 기분 나쁘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건 사실 기분이 나쁘라고 하는 이야기다. 
진심으로 조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이런 사족을 빼는 것이 옳다. 
그래야 그 조언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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