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계획에 없던 캠핑을 왔다.
사실은 주말 동안 전략 코드들을 업데이트한 것들이 꽤나 많이 있고 매매 프로그램과 위험관리 프로그램까지 대대적인 공사를 했던 탓에 내일 새벽까지 모니터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어제 밤새도록 돌려놨던 시뮬레이션 결과를 아침에 확인했는데 한숨만 나왔다. 쳐다보기도 싫어서 오늘 테스트하기로 했던 전략들의 시뮬레이션 배치파일을 돌려놓고 캠핑장을 예약하고 장을 보고 급하게 캠핑장으로 왔다.
이제 5월이면 캠핑 7개월차가 된다. 기간은 짧지만 오늘로서 24번째 캠핑을 맞이했다. 나름 굉장히 숙련된(?) 캠퍼라고 자부하고 있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캠핑을 다녔는데 그동안의 캠핑라이프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원래 잠은 집에서 자야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돈을 내면서 길바닥에서 텐트를 쳐서 고생해 가며 잠을 자는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로 나에게 캠핑은 어처구니없는 비합리적인 행위였다.
여러 가지 일들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짐을 느끼고 있던 작년 가을에 문득 캠핑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용품들을 하나씩 사모아야 했는데 첫 캠핑이 마지막 캠핑일 수도 있다는 말이 떠올라서 최대한 저렴한 장비들로 구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쿠팡과 다이소에서 필요한 것들을 샀다. 늦은 가을이라서 난로가 필요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저렴하고 예쁜 '캠프 10'까지 사게 됐다. 그렇게 딱 100만 원을 채웠다. 100만 원이 많은 것 같지만 혼자 살다 보니 그 흔한 휴대용 가스레인지, 아이스박스 하나 없었다. 결국 그런 것들도 하나씩 모두 사야만 했다.
11월 첫주 평일 고대하던 첫 캠핑을 다녀왔다. 막상 캠핑 당일날 날씨는 그렇게 춥지 않아서 캠프 10은 집에 고이 모셔두었다.
10만 개가 넘게 팔렸다는 로티캠프의 원터치 육각돔텐트를 들고 강화도에 있는 '아르보리아캠핑장'을 갔다. 유튜브 선생님들이 뷰가 끝장난다고 하던 F7자리를 운이 좋게 예약했다. 텐트 치기 전에 쿠팡에서 산 의자를 펴놓고 바라보는 전경을 잊을 수가 없고 그날 저녁에 먹었던 홈플러스에서 산 소갈빗살이 너무 맛있었다. 장작을 어디서 잘 몰라서 홈플러스에서 샀던 조그마한 사각 미니 장작으로 했던 불멍이 인상적이었고 새벽에 바라보던 별자리들이 기억이 생생하다.




첫 캠핑에서 썼던 로티캠프의 원터치 육각텐트는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캠핑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아예 본격적인 장비병이 발동했다. 제대로 된 돔텐트라는 것이 갖고 싶었다. 마침 그 브랜드의 제로스트 S2라는 텐트가 있어서 그 텐트를 구매했다. 우레탄플라이와 우레탄창들도 구매했다.


그러다가 제로스트S2도 조금 작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더 큰 돔텐트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다가 5미터급 초대형 돔텐트를 찾았다. 더캠퍼의 이그니스 V를 샀다. 그라운드시트와 우레탄창 3개까지 함께 구매했다.
한동안 이그니스V는 내 최애 텐트가 됐다. 그 끝내주는 개방감과 볼륨감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이그니스 V의 지름이 5미터가 살짝 넘다 보니 캠핑장 사이트에 따라서 설치할 수가 없는 곳이 종종 있었고 텐트를 전부 다 올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데크사이트도 많지 않았다. 텐트 스킨과 폴대 등을 다 합하면 20킬로는 훨씬 넘기 때문에 설치와 해체할 때마다 힘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그니스 V보다는 조금은 작고 데크에도 편하고 올릴 수 있고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는 가벼운 텐트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또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미니멀웍스의 쉘터G를 눈여겨보게 됐는데 그 망할 쉘터 G의 우레탄창이 품절이었다. 결국은 조금 더 돌아서 아예 다른 터널형 텐트를 사야겠다고 생각했고 미니멀웍스의 그로토를 샀다. '믿거웍스 (믿고 거르는 미니멀웍스)'라는 별명이 있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도 양품이었다.
그로토가 워낙 가볍고 설치도 쉬워서 그때부터는 그로토가 아예 항상 차 뒷자석에 실려져 있게 됐다. 그로토 + 백패킹용 텐트 + 캠프 25S + 유동력팬 조합으로 -15도에 가까웠던 추웠던 동계캠핑들도 잘 다녔다. 그러다가 이그니스 V를 약 3주 전에 세탁을 맡기면서 지금은 아예 그로토만 들고 다니게 됐다.



벚꽃캠핑을 꼭 해보리라 다짐했는데 평일임에도 예약이 이렇게 힘들줄은 몰랐다. 최근엔 다시 아르보리아를 갔지만 강화도는 아직 벚꽃이 만개하기 전이었다.




대략 열흘 전에는 유튜브 슈퍼스타 개냥이 '초코'로 유명한 태안의 청산리오토캠핑장을 다녀왔다. 나는 다른 사이트에 경쟁자들을 제치고 '초코'에게 간택받았고 '초코'는 남은 소고기를 맛있게 드시고 밤새 난로 옆에서 시체처럼 주무시고 가셨다.






그나저나 굉장히 숙련된(?) 캠퍼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동계캠핑만 다녔던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달려드는 꽃등에, 꿀벌, 파리들이 당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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